체력 110
초기 침식률 17
ONELINE

자기, 뭐해? 나 지금 너 보고 있는데.

서 빈



식물 아포칼립스 세계를 살아가는, 상냥하고 관대하지만 어쩐지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는 남자. 한겹의 시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연맹의 수색자이자 채집가.





Q. 당신은 인간재활연맹에 언제 도착했습니까?

A. 작년 5월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그 즈음이었을 거야. 혼자 떠돌았던 기간이 워낙 기니 정확한 날짜를 헤아리기가 어려웠거든.


Q. 당신에게 식물됨이란 끝입니까, 나아감입니까?

A. 아마도 끝일까, 내게는. 하지만 가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이 세상이 판단하기로는 인간이 식물이 되는 것이 나아감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면 적어도 공동체를 깨는 녀석들은 사라질지도 모르잖아.


Q. 이곳에 오기 전 무엇을 했습니까?

A. 소규모 공동체에서 탐색조로 함께했었어. 이 옷들도 그렇게 돌아다니다 얻은 것들이지. 제법 예쁘지 않아? (그리 말하며 제가 입은 짙은 암적색 티셔츠의 옷깃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잡아당겼다가 놓습니다.) 이런 세상에서도 자신을 꾸민다는 건 제법 좋은 회복제가 되는 것 같아. 자기도 조금 꾸며보는 건 어때?







빛에 가깝게 보일 정도로 밝은 밀빛 체모, 한가운데와 가장자리의 색이 다른 강렬한 적색의 홍채. 하여 서빈과 눈을 마주해 본 이들이 가장 강하게 받아들이는 특징은 맹렬하게 반짝이는 붉은색이었다. 갖가지 화려한 자연의 색 중에서도 유독 짙은 원색의 붉은색은 위협을 의미한다고들 하던가. 그는 분명히 그 두 눈에 위협을 담고 있지 않았음에도, 그 화려한 적색과 짙은 흑색을 담은 눈은 강렬하게도 사람의 의식을 모았다. 끄트머리가 올라가 고양이를 연상케하는 눈매나 언제나 자신만만한 웃음을 담고 있는 입술,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가볍게 휘어지는 옅은 밀빛의 머리카락 같은 것은 그 홍채에 모였던 시선이 흩어지고 난 뒤에야 기억 속에 담기고는 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그 눈을 쏙 빼닮은 붉은 색의 물품들을 좋아했다. 시야를 방해할 만큼 길게 자란 앞머리를 넘겨 고정한 두 개의 실핀도, 걸친 옷도 붉은 색이니 알만할까. 안에 받쳐 입은 인디핑크색의 민소매 맨투맨이나, 한겹 덧입은 여름용 긴팔 티셔츠도, 바깥을 외출할 때면 입고는 하는 붉은색 점프수트도 그랬다. 그나마 붉지 않은 것을 찾는다면 망가질 때마다 새로운 것을 구하는 운동화나, 외출하지 않을 때 입는 넉넉한 크기의 검정색 4부 반바지 정도일 테다. 덕분에 그는 자연의 수많은 색 사이에서도 붉게 도드라졌다. 아마 서빈을 아는 이라면, 깊은 숲 한가운데에서일지라도 그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


그러면 그를 눈에 띄게 만들던 요소들에서 한발짝 더 가까워져 볼까. 함께 그의 세부적인 면면들을 살펴보자. 머리카락부터 발가락 끝에 닿기까지, 그만의 특징적인 요소에 대한 이야기다.

가장 꼭대기에 닿아 있는 것은 역시 옅은 밀색의 머리카락이었다. 굽슬굽슬하니 옅게 익은 듯한 빛깔의 머리카락은 몹시 부드러워보이면서도 동시에 몹시 따스해보였다. 실제로 손가락을 얽어 만져보면 의외로 부스스하면서도 포근한 감촉을 선사하므로, 아마 그 머리카락을 유지하기 위해 제 나름 열렬한 노력을 기울였을 테다. 특이하게도 목덜미 부근에서 층을 내어 다듬어 놓은 옆머리와 뒷머리에서도 그 노력이 옅보일지도 모르지. 물에 젖었을 때나 비가 오기 전이면 평소보다도 조금 더 복실복실해지는 그 머리카락은 그의 성실성과 동시에 꾸미기 좋아하는 심성을 내보여주는 면이었으리라.

그 애매모호한 기장의 머리카락에서 눈을 살짝 내리면 시야에 닿는 것은 숱이 많아 짙은 속눈썹으로, 언제나 짙은 눈동자에 가려져 인상에 잘 남지 않던 곳이었다. 홍채에 그림자와 화려함을 더하는 듯 하면서도, 정작 그 빛깔이 옅어 눈에 잘 들지 않는 탓이다. 각자의 방향을 타고 자라난 속눈썹 아래로는 짙은 쌍커풀과 애교살이 언뜻 비쳤다가, 이내 시야 바깥으로 밀려난다. 역시나 그에게서 가장 강렬한 것은 언제나 그 빛나는 눈동자였으므로.


그리고 나서 시야를 조금 내리다 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언제나 헐렁한 옷에 부풀려져 보이지 않던 마른 편의 체구나, 전반적으로 길쭉하게 뻗어 있는 사지 같은 것이다. 자라며 먹었던 음식이 전부 키와 손발로 가기라도 했는지, 유독 큰 편인 손과 발도 뒤늦게 눈에 들어오고는 했다.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분위기를 띄는 외형이 유독 강렬하게 남는 두번째 이유는 바로 이 손에 남아 있는 거친 흔적 탓이리라. 그의 손바닥은 당신의 한 몸을 지키기 위해 험하게 찢겼다가 다시 붙은 흔적도, 날카롭게 베이거나 달궈져 익었던 흔적도 그대로 남아 흉을 이루고 있었으므로.


때문에 서빈은 그 외관만으로도 인상이 손쉽게 몇 번쯤 휙휙 뒤바뀌는 인물이 되었다. 강렬하고 짙은 위협과도 같았다가도 그저 젊은 나이의 순한 청년 같기도 했고, 혹은 거친 삶을 헤쳐온 생존자와도 같은 인상이 되기도 했다. 그것은 아마 서빈, 그가 이 푸른 멸망 속을 살아가고 있는 한명의 개인이자 생을 갈구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리라. 그 모든 면이 겹쳐 그를 한 겹으로 볼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냈다.




[ 상냥한 | 관대한 | 의뭉스러운 ]



“어어, 앞에 나무뿌리. 조심해야지, 자기.”

냥함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을 챙길 줄 아는 마음? 배려를 원하는 사람과 원치 않는 사람을 구분할 줄 아는 세심함? 당신의 뇌리에 어렴풋이 떠오른 단어나 문장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아마 대체로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을테지. 그리고 서빈은 정확히 그 이미지에 부합하는 사람이었다.

다정하며 친절하다. 다른 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알고 챙길 줄 알며, 그 배려가 부담스럽지 않도록 산뜻하게 내어주거나 거두어 갈 때를 지킨다. 타인에게 친밀하게 굴거나 거리를 지켜주는 일에 부담을 가지지 않는다. 타인을 위하고, 대함에 있어서 철저하기는 커녕 무르다. 네가 그러고 싶다면 그렇게 해. 그 말의 뒤에 말을 덧붙이는 일은 없으나 그에게 그 말을 들어본 이들은 다들 알았다. 아마 그 문장의 뒤에 닿을 말은 책임은 함께 져주겠다는 말이리라. 실제로 그는 문제가 생기면 곧잘 상대를 도왔다. 이 세상이 어떻건 그것이 당연한 도리라는 듯이.


“응? 뭘 망가뜨렸어? 으음……. 뭐, 괜찮아. 다치지는 않았고?”

쩌면 그가 타인에게 무르다는 점에서 이것을 예상한 이들도 있을까. 그는 몹시 관대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어떤 해를 끼쳐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가끔은 그것이 관대함이 아닌 무심함으로 비칠 정도로.

그러나 누군가의 관대함과 상냥함을 마음대로 무심함으로 보아서야 되겠는가? 서빈은 분명히 다른 이를 대함에 있어서 무르고 관대한 것이 맞았다. 누군가 자신의 개인 물품을 마음대로 가져가도 괜찮았고, 그것을 망가뜨리거나 다시는 못 쓰게 만들어도 용서했다. 어차피 돌아올 수 없는 물품보다는 공동체와 사람이 더 주요하다고 했던가? 물건을 손쉽게 다시 살 수 있었던 과거에도 그토록 쉽게 남과 나누고 타인을 용서하는 이들은 없었을 텐데. 서빈은 멸망해가는 세계에서 태어나 사라진 나라에서 성년을 맞이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도 나눔도 용서도 쉬웠다. 욕심이라는 것이 없는 것처럼. 당연하게도, 그는 화내는 일도 없었다. 화를 내는 것보다 용서하는 것이 빨랐으므로.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해?”

하게도 서빈을 오래 보아온 사람들은 그를 향해 특이한 평을 남기곤 했다. 의뭉스럽기 짝이 없는 인간, 하고. 첫만남에서 눈이 아무리 강렬했다지마는 순하고 상냥하기만 한 사람인데 말이지. 이상하기 짝이 없는 평 아닌가.

자고로 의뭉스러운 인간이라는 말을 누구에게 하던가? 겉으로는 제 이득도 제대로 얻어내지 못하는 듯 순박하고 착한 척, 뒤로는 제 이득만 성실하게 챙기고 좋은 것만 쏙쏙 빼가는 엉큼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에게나 붙는 이름이 아니던가. 적어도 언제나 분배에 있어서 자신보다는 공동체를 우선하는 서빈같은 사람이 들을 만한 평가는 아니었다. 그래, 그 어떤 의뭉스러운 사람이 제가 얻어내야 할 이득도 다른 이들에게 돌려준다는 말인가? 어쩌면 각박한 세상 속에서 나눔의 미덕을 중시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지 않은 탓에 생긴 평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가 무언가 속내를 숨기고, 뒤통수를 칠 요량으로 신용을 사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해가 되는 행적이니까. 그가 정말 의뭉스러운 인간일 리는 없느냐고? 에이, 그럴 리가.









 멸망 이전의 세계 

든 일이 시작되었으나 아직 심각해지기 이전, 2026년 8월 13일의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났다. 손윗형제고 손아랫형제고 없이 부모님만 있는 3인 가정이었다. 그 자그마한 공동체 속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은 제법 괜찮았다. 열대 기후로 진입한 대한민국은 분명히 더웠으나 그는 기억이 있는 시점부터 이미 사계절을 겪어본 적이 없었으므로 큰 문제라고 느껴본 적이 없었고, 대한민국의 정부가 사라진 17살에는 ‘결국 그렇게 되었구나’라는 생각만 했다. 자아를 가진 이후의 그의 삶에서 세상은 언제나 인크로처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으므로, 현재의 삶은 언젠가 오고야 말 멸망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17살까지의 정규 교육과정은 제대로 밟을 수 있었기에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까. 그때껏 배워왔던 지식들은 멸망한 세계에서 쓸만한 지식은 아닌지도 모르겠다마는.


 멸망 이후의 세계 

여간, 그런 것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멸망한 세상을 살아가는 법에 미숙한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의 이야기였고, 서빈은 이미 멸망하고 있는 세계에서 태어난 만큼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에 익숙해진 뒤였으므로. 때문에 서빈은 멸망한 세상을 탓하는 것보다는 하루하루를 조금 더 충실하게 살기로 했다. 부모님과 함께 들어가게 되었던 첫 소규모 공동체에서 수색을 주로 도맡게 된 것은 그런 이유였다. 다치는 일도 잦고, 식물들을 살피며 채집해야 했으므로 불안하고 위험했지만 젊은 덕에 몸이 날래고 회복력 좋은 그로서는 고민 없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겠지. 지금의 서빈 또한 제 나름 이곳저곳 찾는 재주가 좋은 채집자이자 수색자였으므로, 그의 진로 선택은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테다.


그러다 어떻게 이곳, 인간재활연맹에 홀로 들어왔느냐 하면…….


서빈은 그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대답해주는 일이 없었다. 가족에 대한 질문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 사람이 식물로 변해가는 이 세상에 그와 같은 사람이 한둘은 아니었으므로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저, 늘 순하게만 대응하던 그가 유독 박한 대답을 내뱉는 것이 기묘하여 기억에 오래 남게 되는 것일 뿐. 인간 재활 연맹에 합류한 지가 벌써 1년이 다 되었음에도 그 대응은 변치 않았다는 것도, 어쩌면 그의 태도가 기억에 오래 남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서빈의 세계 

러나 사람은 각박한 삶의 한가운데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기 마련이라. 서빈 또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구분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그는 일찍이 수색을 마치면 그날 자신이 채집한 나물이나 식물 뿌리 같은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 하나를 따로 챙겼다. 그리고는 잘 말려서는 늘 가지고 다니는 비닐 속지 다이어리에 모았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가장 간단한 수집이었고, 가장 좋아하는 취미 생활이었다. 종종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 그 안에 있던 것을 꺼내 다른 이들에게 먹으라고 내놓아야 하기는 했지만, 그런 순간에도 그는 슬퍼하는 기색 없이 순순히 내놓고는 했다. 어쩌면 그의 취미생활은 거기까지가 한묶음일지도 모른다.

또, 그는 예쁜 머리장식이나 깨끗한 옷을 좋아했다. 지내는 이 없이 비어있는 집을 보면 항상 옷장을 살폈다.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챙겨 입었다. 대체로 붉은 색 옷을 선호하는 탓에 그렇게 챙기는 옷이 아주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면 반대로 싫어하는 것도 있겠지. 서빈은 유독 소란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비오는 날은 좋아했으나 번개가 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고, 누군가 싸우는 소리를 싫어했으며, 분쟁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지러운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 티를 내는 편은 아니므로 아는 이는 적었으나, 소란스러운 날의 서빈을 본 일이 있는 이라면 눈치챘을 수도 있을 테다. 그는 그토록 소란할 때면 유독 조용해졌다. 그 강렬한 존재감도 한순간 사라지게 될 듯이.








검정색 다이어리 - 속지에 종이 대신 비닐 포켓이 채워진 수첩 크기의 다이어리. 안에는 이런저런 식용 식물들을 말린 것을 모아 두었다……만, 모인 양은 몹시 적다. 말린 고사리 한 가닥, 흰 꽃잎 한 장……. 아마 그 안에 든 것들을 전부 먹어치우더라도 주린 배를 채우기는 어렵겠지. 인간재활연맹에 들어온 후로는 이 다이어리의 표지에 LHR 마크와 이름을 새겼다.


머리빗 - 한때 빈 집에 있던 것을 주워와 지금껏 사용하고 있다. 머리를 깔끔하게 다듬기 위해 사용하는 필수품.







타인의 모든 것을 용서하는 사람은 상냥한가, 아니면 무심하며 냉정한가?

빈이 이 세상에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이후로, 그는 단 한번도 상냥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데에 큰 고민이 없었으며 그 용서에 대한 후회를 해본 적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기실 그들이 서빈,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큰 관심이 없었으므로. 단 한 순간도 관심도, 신뢰도 가져본 적 없던 존재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건 하등 신경도 쓰이지 않는 것은 자연적인 법칙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서빈에게 있어서 누군가에게 상냥한 척, 귀찮음 섞인 양보 하나를 해 주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애초에 관심 없는 물건에 대해서는 욕심 또한 없었으므로.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사람에게 상냥함의 탈을 씌우는 것을 좋아했다. 무심하며 냉정하여 귀찮은 손길을 대충 떨쳐내는 사람보다는 상냥한 사람에게 배려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쪽이 편리하지 않은가. 그렇기에 서빈은 상냥함이라는 탈을 썼다. 무심하든 아니든 그는 애당초 늘 웃는 얼굴이었으므로, 본인이 따로 연기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친절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토록 모든 것에 무심한 사람도 결국은 사람인지라.

람은 신이 아니고, 모든 것에 그저 무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빈도 받아줄 수 있는 그릇이 조금 넓을 뿐 그저 사람일 뿐이라, 모든 일에 오직 무던할 수가 없었다. 예를 들자면, 서빈의 ‘상냥함’을 믿고 제멋대로 발을 뻗는 인간들이 있을까. 서빈은 소란이 생기는 것도, 분란이 생기는 일도, 그리고 귀찮게 될 법한 모든 일을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가능한 대부분의 일은 요구를 들어주며 끝냈으나 그렇게는 해결이 되지 않는 일은 종종 생겼다. 공동체에 늘 양심이 있는 사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고, 공동체보다 자신의 이익이 우선되는 사람은 반드시 존재했으므로.

서빈은 그 어떤 것보다도 그런 인간이 가장 싫었다. 그런 이들은 자신을 귀찮게 만들었고, 공동체에 분란을 만들었고, 결국 큰 소란을 일으켜 공동체를 무너뜨리고는 했으므로. 그가 거쳐온 소규모 공동체들은 대체로 그런 인간들에 의해 무너졌다. 약 한 달 정도를 몸담았던 6명짜리 공동체가 고작 두 명이 벌인 싸움으로 철저하게 와해되었을 때는 이미 여덟 번째로 공동체의 끝장을 본 상태였다. 3년간 여덟 개의 공동체가 파토가 나다니. 심지어 그중에는 그의 부모가 파토를 내 버린 곳도 있었다. 서빈은 너무 큰 현타가 온 나머지 가족조차 두고 떠나 장장 1년을 혼자 떠돌았다. 그의 손에 남아있는 대부분의 흉터는 이 시기에 생겼다. 다쳤던 것을 치료하는 동안에도 수색은 홀로 해야 했던 탓이다. 그리고 서빈은 그 즈음 다시 공동체와 함께할 각오를 다졌다. 어차피 뭘 나눠주는 게 나한테는 큰 문제도 아니고, 앞으로는 누가 문제를 일으키면 내가 전담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공동체는 지킨다. 그리고 그 후로 2051년까지 약 6년, 그는 열다섯 개의 공동체가 생기고 사라지는 걸 봐왔다. 대부분은 이기적인 인간이 몇씩 붙은 탓이었다. ‘이 세상이 왜 인간을 식물로 바꿔버리고 싶어 하는지 알겠어. 식물은 적어도 이렇게 자기만 살겠다고 공동체에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 아냐.’ 인간에 대한 모든 기대를 버린 시점이었다.


마지막 한 가닥의 기대를 걸고.

2051년 5월 3일, 서빈이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공동체에서 떠나온 그 날. 그는 거의 동시에 인간재활연맹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간의 문화’를 보존하고 ‘인간을 이루는 가치’를 중요시하는 연맹이라. 지금껏 봐왔던 환멸나는 인간들에 대한 기대 따위 없었던 서빈은 오히려 그 목적에 흥미를 느꼈다. 결국은 이기적일 뿐인 인간들을 보존하고 재활하는 데에 가치가 있다고 이들은 판단했나? 그렇다면 이 공동체에는 개인보다 공동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까? 그런 사람들 틈에서 지내면 조금은 편안할까. 서빈이 인간재활연맹에 몸을 의탁하게 된 것은 그 자그마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이제 곧 1년 2개월이 되어가는 인간재활연맹에서의 삶은 그에게 어떻게 다가오고 있을까.





러닝 IF


지향 포지션: 상냥하게 챙겨주면서 아닌 척 독버섯 먹이기/전기지지미 공동체거위

너도 결국 인간인데 문제 일으키는 것 아냐? 넌 공동체를 어떻게 생각해? 공동체가 소중해 아니면 너 스스로가 소중해?


세상이 망했는데 여전히 이기적인 사람을(혹은 망했기에 이기적이게 된 사람을) 너무 많이 봐 왔고, 그렇기에 사람을 불신하여 자신의 본질을 내보이지 않게 된 캐릭터입니다. 물건이 필요하면 나서서 나누어주고 건네주지만 그 모든 것은 생존을 위해 공동체를 깨지 않기 위함이지, 도덕적 혹은 윤리적 판단이 아닙니다.

그러나 동시에 언젠가 인간이 공동체를 위해 각자를 조금씩 희생하여 조금 더 좋은 공동체를 굴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때문에 다른 캐릭터들을 기본적으로 챙겨주지만, 동시에 다른 캐릭터들의 반응을 관찰하고 토론을 시도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마음에 벽을 두 겹 이상 치고 있으며, 자신의 기준을 넘긴 사람만 그 안에 받아들이려고 할 것 같으나 동시에 그 기준을 넘지 못한 인물에게도 (공동체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기대와 정을 느낄 가능성이 있습니다.


행동 방향성은 언제나 생존과 공동체의 유지입니다. 공동체의 유지와 자기 자신의 생존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두 방향성이 극단적으로 갈라지는 것이 아닌 이상(즉, 자신의 죽음이 코앞에 있는 것이 아닌 이상) 공동체의 유지를 1순위로 따져 움직입니다. 인간재활연맹과 같은 대규모의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처음이므로 언제나 공동체에 대한 불안감을 조금은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감염 IF


침식률 상승으로 인해 식물이 된다면 협죽도가 됩니다. 자신이 식물이 되어가는 것을 보더라도 현대 인류는 모두 보균자임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크게 망연자실하거나 이상행동을 벌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식물이 되어가는 상태에서 공동체 내에 머무는 것이 공동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할 시 (즉, 침식률이 과히 높을 시) 스스로 이탈을 선택하여 숲 속으로 들어가거나 아직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상태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합니다.


체력 110
초기 침식률 17

WARDRO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