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에 찬 신도 이덤 피암마 라니에로
22세, 남성
외관
-색 바랠 일 없을 듯 짙붉은 장밋빛 머리카락은 끄트머리가 옅게 굽실거린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흐트러질 때면 느껴지는 짙은 장미수의 향은 그가 지나간 자리에 옅게 잔존한다.
-눈꼬리와 얇은 눈썹 끄트머리가 모두 위로 치켜 올라가 있는 모양인데도 불구하고 성격이 사나워 보이기보다는 자신감이 가득해 보이는 인상. 이목구비만 따져봤을 때는 여우상에 가깝게 보인다.
-오른 눈 아래의 세로로 연이어지듯 찍혀 있는 두 개의 점이 몹시 특징적이다. 어쩌면 그 점의 모양 하나만으로 그를 특정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허벅지의 대부분을 덮는 고급스러운 재질의 가죽 부츠를 신고 다닌다. 옆부분을 터 신기에는 쉽고, 그 안쪽에 단추를 달아 겉보기에 태가 나빠지는 일이 없게 한 물건으로, 안목 좋은 인물이라면 몹시 신경 써 만든 신발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성격
광신이라 함은 무엇인가?
신께서 계시는 것은 물론이요, 그분께서 신앙을 받으시는 것이 당연할진대 누군가의 신앙을 광신으로 정의함이 옳은 일인가? 그러나 우리가 보고 있는 그, 이덤 피암마 라니에로의 신앙은 광신이라는 단어로 정의하기에 한 치의 부족함도 없는 것이었다. 모든 힘든 일은 신께서 내리신 시련이요 만물이 그분의 손 아래에 놓인 기물과 다름이 없거늘 그분의 손 아래서 아주 작은 성냥불처럼 소모된다고 하더라도 그분께서 안배하시는 길이라면 받아들이겠다고 온 마음을 담아 속삭이는 인물이 어떻게 제대로 된 신앙을 가진 자일 수 있겠는가? 그는 언제나 진심을 담아 신을 사모하였으나 그것은 그의 광기와 뒤섞여 비틀린 모양으로 변화했다. 그의 모든 것은 신을 위한 것이다. 몸, 마음, 그리고 그의 모든 노력과 감정마저도.
광신도임에도 오만무도하다니, 불명예로는 둘째가라면 서럽겠군.
신 앞에 그렇게 몸을 웅크리고 사랑을 속삭이면서도 오만무도하기로 유명하다니 그의 성격이 어떻게 되어 먹었는지 조금 알 만도 한가. 그는 그의 본질적인 기질에 광신이 있지 않았다면 큰 사고를 내지 않았겠는가 싶을 만큼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기사 소설 속 악행을 일삼는 악랄한 귀족과 같아지지는 않았을까? 그는 본질적으로 오만했다. 어쩌면 자아도취로 보이기도 하는 그 오만은 도리어 그를 한없이 가벼워 보이게 만드는 요소였으나, 그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것을 그가 왜 신경 써야만 한단 말인가? 그의 오만은 신과 그 대리자이신 황제 폐하의 앞에서만 수그러들어 마땅한 것인데.
그러나 오만이 그로 하여금 자비를 베풀게 하니, 차라리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의 오만이 가지고 오는 단 하나의 이점이 있다면 그가 베풀게 된 자비에 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기 정수리 위에는 신과 황제께서 계신다고 하나 그의 발밑에 무더기로 있는 것이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이니,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하든 진리를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고 안타까운 이들의 헛된 망언일 뿐이니 자비를 베풀게 되는 것이다. 다른 이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신께서 사용하실 신의 기물이라고 여기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발아래 놓인 이들일 뿐이라는 오만과 그로 인하여 나타나는 자비는 그를 어디로 끌어 나갈 것인가? 현재의 그는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가.
특징
"라니에로? 그 미치광이 귀족들 말인가? 어휴, 말도 꺼내지 말게. 죄 어디 한 군데는 고장이 나서는, 뭐 하나씩 끌어안고 죽으려는 것처럼 굴지. 그 중에 제일은 그 차남이야. 신앙에 미쳐서는……. 뭐? 이런 말을 해도 되느냐고? 괜찮아, 괜찮아. 그 치들은 제 욕을 하든 말든 관심도 없으니까."
"그 집안은 사람을 말려 죽여. 왜, 그 현숙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던 라니에로 부인도 그 집안에서 10년을 못 버티고 죽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 광신도가 유독 신앙에 미친 것처럼 구는 게 사실은 신에 대한 의심 때문이라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 유독 격렬하게 반응하는 걸 보면 영 의심이 간단 말이지."
"안타까운 라니에로 부인, 그토록 사랑했던 아이들이 제 무덤 앞에서도 울지 않는 것을 보는 기분이란 대체 어땠을지."
"들었나? 얼마 전에 라니에로 가문에서 쫓겨났다던 하녀 말이야. 알고 보니 식전 기도를 평소보다 설렁설렁 했다는 이유로 쫓겨났다더군. 해고장에 쓰인 사유야 다른 이유라지만, 그것도 그냥 트집 잡기라던데. 알만 하지, 그 집 차남 성질머리면."
"라니에로의 작은 불꽃 말일세. 사실 유독 신앙심이 깊은 것이 어머니의 유지를 받든 거라는 이야기가 있다네. 왜, 그 귀걸이 있지 않은가. 그게 사실은 전 라니에로 부인께서 쓰시던 물건이야. 근데 그 작은 불꽃이 유독 그 귀걸이 하나는 빼놓지 않고 늘 끼고 다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알만한 사람들은 다들 그런 이야기를 수군대는 거란 말이지…."
기타
RANIERO
미치광이의 가문
라니에로! 미치광이들로 넘쳐나는 그 가문. 남부에 영지를 두고 있는 소영주 답게 한 때 그들이 가진 부와 학식으로 가문의 명성을 드높이던 것이 거짓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어느 순간 광인들이 가득한 가문이 되어버렸다. 각자의 분야에 미친 것처럼, 아니, 정말 미쳐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외부에서 가문으로 편입된 이들은 그 분위기를 이기지 못해 말라 죽어가고, 가문에서 태어난 이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을 버티지 못하고 도망쳤으나 그들은 변화하지 않았다.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외부의 시선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가 사랑하는 것이 내 눈앞에 놓여 있는데!
그럼에도 그들이 잘 살아가는 건, 꼭 그들 중 하나 정도는 일에 빠진 이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그 대에 가장 가문과 상단을 돌보는 데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가문을 대물림하며 키웠다. 그렇게 대대로 물려 내려오다 지금 라니에로의 주인이 된 것이 바로 이덤의 아버지, '오토네 라니에로'였다.
현재의 라니에로는 가문의 분위기가 바뀐 이후로는 가장 능력 좋은 가주로 인해 가장 부유하고 보화가 넘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하지만, 그 명성만큼은 최악으로 바닥에 떨어져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당연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그들 가문의 모습을 감출 생각 없이 내보이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FIAMMA
작은 불꽃
피암마, 그러니까 이덤의 미들네임은 그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이름이었다. 사실 그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꽤 많은 편이었다. 그 장미꽃처럼 짙붉고 결 좋은 머리카락이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웃음, 짙은 속눈썹, 말투, 언제나 그의 귀에 걸려 머리카락과 함께 찰랑거리는 검정색 귀걸이까지도 그의 어머니로부터 온 것이었으니까.
형제 자매만도 3남 2녀는 되는 사람 많은 집안에서 유독 그만 어머니를 닮았다. 그러니까, 광기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이덤의 광기는 가문 내에서도 유독 과격한 편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정숙하고 다정하며 현명한 인물이었다는데, 그는 도대체 어째서 이토록 격렬하고 강력한 광신에 빠져 버렸는지. 각기의 분야에 미쳐 있는 사람들로 가득한 가문에서조차 그의 광기에는 질린 것처럼 반응했다. 하기야, 그의 광신은 주위로 발산되곤 했으므로 그들도 깨나 시달렸을 법 했다.
EDOM
이덤 피암마 라니에로
아, 그리고 드디어 이덤에 대한 이야기에 도달한다. 3월 15일, 꽃샘 추위로 아직은 서늘한 초봄의 한 날. 3남 2녀 중 차남이자 동시에 넷째로 태어난 그는 유독 신에 관심이 많았다. 기도문, 지역과 교파별로 나뉘는 교리(그는 따지자면 보수적인 엠파이라교에 속했지만, 신을 믿기만 한다면 어떤 교파든 신경쓰지 않았다), 여태까지 황제를 통해 내려온 수많은 예언들까지. 그는 8살이라는 나이에 자신의 관심 분야를 찾아냈으며 5년도 되지 않아 광신도라는 말에 어울리는 인물이 되고야 말았다. 그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독 제 몸을 챙기는 것조차 그저 광신도로서 몸가짐을 바르게 하기 위함일 뿐일 정도였다.
그러니까, 그가 절대신에 대한 것을 제외하고 다른 것을 배우는 것 또한 같은 이유였다. 신이 바라시는 대로 하나의 기물이 되어 움직이고자 한다면 자고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늘리고 그 한계를 알아두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의 대리자께 직접 충성을 바칠 수 있다면 좋고. 그가 황군사관학교를 선택한 배경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당연히 매 해 혹서/혹한기의 특별 훈련에도 신청했다. 아쉽게도 붙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지만.
그는 다른 사람에게 크게 관심이 없었다. 신과 신의 대리자 외에 알아야 할 게 있나? 내가 왜 알아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겉으로도 티가 났다. 때문에 남의 얼굴이나 이름도 잘 외우지를 못했다. 간혹 눈에 보이는 특징적인 것이 있다면 외울 때도 있지만, 그럴 때도 이름보다는 제멋대로의 별명을 붙여 부르는 일이 잦았다. 하긴, 오만무도하신 광신도 나으리께서 이름을 외워 봐야 얼마나 잘 외우시겠느냐만. 그래도 그의 정도는 유독 심했다. 가끔 가족의 이름조차 헷갈려 하는 일이 있었으니까. 가족이 많으니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지만, 아니, 이 정도면 관심이 아니라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수준이 아닌가?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것 치고는 자기 스스로에게는 유독 관심이 많았다. 피부를 관리하는 법이나 머릿결을 유지하는 법을 직접 익혀 사관학교에 있는 동안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관리했다. 광신도인 줄로만 알았더니 나르시스트였느냐 물으면 그는 이왕 아름다운 외모이니 평생 잘 관리해 잘 써먹는 것 또한 신께서 원하시는 길이 아니겠느냐 이야기했다. 결국은 오만한 나르시스트라는 것은 똑같았다. 그가 실제 미형의 얼굴을 타고난 것과는 별개로.
절대신, 용을 제외하고는 취미도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그다지 없다. 그저 자신의 모든 것을 신을 위해 갈고닦아 바치고 싶어 할 뿐이다.
비밀설정
라니에로의 광기는, 적어도 내부의 기록상으로는 바야흐로 10대 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최초의 광기에는 그다지 큰 이유가 없었다. 주위에 큰 영향을 미친 것도 아니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분야에 대한 광적인 애정을 겪었던 것은 가주가 아니었고, 가문의 분위기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법한 사람도 아니었던 탓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은 점점 번져갔다. 초자연적인 문제나 유전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그의 광기에 대해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학술에 대한 의지로 받아들인 이들이 물들어간 탓이다. 그것은 광기라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나 그 분위기를 견뎌내지 못한 이들은 그것을 광기로 간주했다. 라니에로의 광기가 광기로 여겨지고 이어지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이 시점이었다. 그 뒤로는 광기가 가문을 덮었다. 그 광기에 익숙해지지 못한 자들은 성년이 되자마자 다른 가문의 사람과 결혼해 성을 바꾸거나 삭막한 가문의 분위기에 메말라 죽어갔다. 악영향은 돌고 돌아 가문은 점점 광적인 분위기에 집어삼켜졌고, 이제는 거의 대부분이 각자의 분야에만 빠져 다른 사람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는 사람들로만 채워졌다.
이덤은 그런 라니에로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최초의 이덤은 가문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면이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최초에는 정상적인 아동으로서의 면모를 보이며 자라나다가 점점 가문의 분위기에 물들어갔던 것과 달리, 이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상을 드러냈던 것이다. 생긴 것은 어머니를 쏙 빼닮아 가문에서 제일 정상적으로 굴 것 같아서는, 도리어 아주 어렸을 적부터 자신의 관심 분야 외에는 시선 한 톨조차 주지 않는 등 유아동기에 보이는 모습으로는 적절하지 않은 모양새를 자주 보이곤 했다. 그나마 제 관심 분야를 확정 짓게 된 이후로는 주위에 시선을 잘 주게 되었으나.
이덤의 나이 9세, 라니에로 부인이 사망했다. 제 어머니의 죽음이었으나 이덤은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형식적인 애도 이후 어머니가 제 앞으로 남긴 유품 귀걸이를 늘 착용하고 다니기는 하였으나 그것에도 큰 의미는 없는 듯 싶었다. 그저 제 앞에 놓이게 된 유품조차 신께서 안배하신 바이겠거니, 생각하고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러니까 결국, 이덤의 행동과 별개로 그 속에 든 것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능력이 뛰어나거나 두뇌가 좋더라도 그의 공감 능력이나 감정은 타인을 향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자신만을 사랑하며, 자신이 사랑하는 신과 그 대리자만을 사랑해왔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