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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페어] 발렌타인
청월광 25-02-16 23:52 4

선우준과 서민오는 주방 작업대 앞에 섰다. 이유는 간단했다. 곧 돌아오는 발렌타인 데이 전용 영상을 찍기 위해서였다. 물론, 발렌타인 데이 전용 영상이라고 해도 별 건 없었다. 그냥 둘이서 초콜릿을 만드는 영상일 뿐이니까. 이미 구독자가 50만을 넘긴 시점에서 신규 구독자 유입을 위해 찍는 것도 아니었고.

“안녕하세요, 밀카 여러분. 오늘은 발렌타인 기념 수제 파베 초콜릿을 만들어 볼 거에요.”

사실, 이런 영상을 굳이 서민오와 함께 찍는 것은 선우준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좋은 선택은 아닐지도 몰랐다. ‘멤버들 팽개치고 유튜브 같은 데 나오면서 자컨에서나 할 법한 컨텐츠를 막 한다’느니, ‘발렌타인 컨텐츠를 팬들한테 해 주는 것도 아니고 남의 구독자 앞에서ㅋㅋ?’ 같은 댓글이 달릴 가능성은 물론이요, 제 구독자와 서민오의 팬이 댓글 창에서 싸워댈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인력이 많다고는 입이 찢어져도 할 수 없는 선우준의 유튜브 채널에서는 이런 식으로 싸움이 날 때 진압시키는 게 퍽 어려웠다.

그래도…….

“초콜릿은 최대한 가늘게 썰어주세요. 녹다 말고 타 버리면 너무 써서 맛이 없어지거든요.”

선우준은 작업대 위의 재료 초콜릿을 잘게 썰며 눈을 흘겼다. 그럼 언제나와 같이 옆자리에서 제 할 일에 매진하는 서민오가 시야 구석에 들어온다. 마가 뜨지 않게 방송용 멘트를 치면서도 선을 넘지는 않는다. 프로 아이돌로서 나와서는 안 될 기사를 종종 걸리기는 해도 확실히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연예인은 다르구나. 그런 자각을 하는 순간은 함께 일할 때 말고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동시에 그 많지 않은 순간을 선우준은 좋아했다.

“발렌타인용 선물로 줄 초콜렛에서 탄 맛이 나면 그건 그것대로 귀여울 거에요.”

“그건 이미 서로 좋아하는 사람일 때의 이야기 아니에요? 짝사랑이면 감정을 테마로 한 맛이 되어버릴 텐데.

“고백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지는 말고요.”

선우준은 가볍게 타박하며 잘 썬 초콜릿을 남김없이 제 몫의 볼 안에 넣었다. 투명한 볼 안에 녹은 곳 하나 없이 쌓인 초콜릿이 정갈했다. 서민오도 비슷했다. 하긴, 이런 디저트 방송을 몇 번쯤 했으니 익숙해 질 만도 했다.

“그럼 이 볼은 잠시 이렇게 두고, 이번에는 생크림을 끓여줍니다. 우유로도 대체할 수 있으니 편한 것으로 골라주세요.”

“생크림과 우유에 차이가 있나요?”

“별 차이는 없어요. 그래서 지금 구하기 쉬운 것으로 만드는 게 가장 좋고요.”

선우준은 냄비 바닥이 타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을 덧붙이며 불을 올린다. 약불에 끓지 않을 정도로만 데워지는 생크림을 서민오가 근접해 찍는다. “왜 냄비가 하나냐고요? 음……. 환경을 위해?” 중간중간 채팅을 읽고 대답하는 목소리가 언제나처럼 장난스럽고 활기찼다. 그 사이 선우준은 냄비 위로 손을 펼쳐 온도를 대충 확인하고, 생크림이 튀지 않게 초콜릿을 잘 쏟아넣는다.

“냄비 바닥에 눌어 붙게 되면 닦아내는 게 꽤 고생스러울 거에요. 조심히 휘저어 가며 녹여줍니다.”

잘게 부순 초콜렛은 순식간에 생크림과 섞여 녹아내린다. 이대로 과자에 찍어 먹으면 그건 그것대로 달콤하겠지. 방송용으로 만드는 것을 그렇게 헛되게 소비할 생각은 없었지만, 선우준은 그런 식으로 먹는 것을 비난하지는 않았다. 음식이라는 것은 본인이 맛있게 먹는다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니겠는가.

초콜릿은 생각보다 빠르게 녹아내렸다. 꾸덕하게 녹은 초콜릿에 와인을 소량 넣는다.

“지금 넣는 건 와인인가요?”

“맞아요, 조금 넣어주면 풍미가 살아나거든요. 하지만 미성년자나 술을 싫어하는 분들은 굳이 넣지 않는 것도 괜찮아요.”

“흐음, 그렇군요. 라떼 형은 와인이 들어간 쪽이 더 좋아요?”

“기왕 고르자면 들어가지 않은 쪽이 더 좋을까요…. 저는 술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요.”

자, 이제 이걸 용기에 잘 펴서 담아주세요. 선우준은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고 서민오와 자리를 바꾼다. 냄비를 담고 있던 카메라가 고개를 들어 서민오를 담았다.

고개를 살짝 숙인 서민오의 얼굴이 척 봐도 따끈따끈해 보이는 냄비와 함께 카메라에 잡힌다. 서민오는 꾸덕거리는 초콜릿을 두어번 휘적거리다 작은 육면체 용기에 나누어 담았다. 용기 두 개를 꽉 채우고 나면 남는 초콜릿은 없었다. 애초에 정량으로 만들었으니까 당연한 일이지. 선우준은 내심 기분 좋게 여기며 냄비를 치웠고, 서민오는 초콜릿 용기 위에 랩을 씌웠다.

“이제 두 시간을 기다린 뒤 균등하게 잘라주면 됩니다. 다 굳었는지 확인할 때는 꼬챙이나 이쑤시개 같은 걸로 찔러보면 돼요.”

그리고 선우준은 자연스러운 태도로 냉장고 안쪽에서 식어가고 있던 초콜렛을 꺼내온다. 생방송의 아쉬운 점, 그것은 요리를 하며 생기는 시간의 공백을 구독자들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초기에야 선우준도 몇 번쯤 실수를 했다지만 이제는 그럴 시기는 지났다. 방송 시작 두시간 전 미리 하나를 더 만들어 두는 꼼수는 이럴 때는 잘 통했다.

서민오도 자신과 요리 방송을 할 때는 몇 번쯤 써먹어 봤던 방법이라, 이제는 놀라지도 않았다. 다 먹어서 치울 수는 있냐며 놀리듯 투덜거렸을 뿐이다.

“자, 오늘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길어서 초콜릿을 하나씩 미리 만들어 뒀어요.”

“초콜릿이 각자 두 통 씩이나 되는데, 이거 다 먹을 수는 있겠어요?”

“민오 씨가 멤버들이랑 나눠 먹어줄 거라고 믿어요.”

“그거 결국 나한테 떠넘긴다는 거 아니야?”

황당하다는 감정이 가득한 게 느껴지는 목소리와 얼굴이 카메라에 잡힌다. 선우준은 당연하다는 듯 별 반응도 없이 넘기며 이쑤시개를 손에 든다. 서민오에게 성의없이 대하는 것 치고, 이쑤시개로 초콜릿을 콕 찔렀다 느리게 빼내는 손길은 조심스럽다.

“자, 이렇게 묻어나지 않으면 잘 굳어진 거에요. 이 뒤에는 예쁘게 잘라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면 된답니다.”

그리고 방송은 물흐르듯 종료된다. 까만 화면으로 변하고도 한동안 조용한 상황을 유지하던 두 사람은, 방송이 확실하게 꺼진 것을 확인하고서야 다시 입을 연다.

“그래서, 진짜 나보고 다 가져가라고?”

“누가 다 가져가래요? 네 통이니까, 세 통만 가져가요.”

“한 통은 네가 먹게? 의외네.”

서민오는 당연하다는 듯이 의자를 슥 당겨 앉는다. 작업대 앞에 여전히 서 있는 건 선우준 뿐이다.

제가 만들어뒀던 초콜릿을 빤히 보고 있는 두 붉은 눈은 무슨 생각을 담고 있는가. 감정이 일렁이지 않는 눈이 곧 느리게 들려 서민오를 바라봤다.

“두 시간 정도는 기다릴 수 있죠? 어차피 평소보다 방송도 일찍 끝났고.”

“내가 초콜릿 처리하겠다고 그렇게까지 기다려야 할까?”

“싫으면 두 통만 가져가고요.”

어차피 지금 굳어 있는 것도 선우준, 그가 미리 만들어 둔 거니까. 발렌타인의 목적에 크게 어긋나지는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주며 고백하는 날이라. 선우준은 적당히 사 뒀던 푸른 포장 상자에 조각낸 초콜렛을 옮겨 담았다. 달콤하게만 보이는 초콜릿 한 조각에는 사랑이 담겨 있나. 처리하기 힘든 음식을 나누는 척 하면서 사랑이 담겨 있는지에 대한 고찰을 하는 것은 너무 우스운 것은 아닌가. 선우준은 헛웃음도 담기지 않은 평소의 낯으로 초콜릿 두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서민오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힘든 낯으로 선우준이 하는 양을 보고 있을 뿐이다.

“자, 두 통 포장해놨어요. 기다리기 싫으면 이것만 가지고 가요.” 

“그래, 간식 고맙다?”

결국은 안 기다리고 가는군.

선우준은 옅은 아쉬움을 쉬이 감춘 채 서민오를 배웅했다. 서민오는 아쉬움 같은 것 없이 선우준의 스튜디오를 나가버린다.

달칵, 삐리릭. 도어락 잠기는 소리만 짧게 울리고 만다. 방송 겸용으로 구한 스튜디오는 괜히 방음이 좋아서는 문 밖에서 걷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평범한 건물이었다면 탕탕거리며 복도를 울리는 소리라도 들렸을 텐데, 하는 생각을 짧게 하다가 선우준은 고개를 젓는다. 스토커 같은 짓이지, 그건.

그리고 서늘한 스튜디오의 소파에 앉는다. 다리를 쭉 뻗되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허리를 옹송그리지 않고, 무릎을 세워 쭈그리지 않는다. 다리를 꼬지도 않는다. 초콜릿을 만드느라 살짝 서늘하게 유지하고 있던 스튜디오에서 선우준은 그렇게 멍하니 앉았다.

초콜릿이 다 굳으면 먹어서 치워야겠지. 좋아하는 감정을 담지 않고 만든 초콜릿이라지만 아마 입안이 얼얼해지도록 달 것이다. 선우준은 소파 뒤의 벽에 뒤통수를 기대며 눈을 감았다. 초콜릿이 굳기까지 약 1시간 30분. 혼자 기다리는 이 순간의 공기가 미치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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