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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예준 비밀설정 로그 - 2052. 12. 07
청월광 24-09-23 00:49 6

비릿한 바다 내음과 섞인 피 냄새를 외면하던 순간에도, 그리고 이제는 강제로 눈을 두게 된 이 순간에도.

종종 그 날을 생각한다.

나의 인생을 바꿔 준 사람이 죽은 그 날을.





 


 


2052. 12. 07

주예준


 


 





그 날은 뺨을 에일 듯한 강한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겨울이니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으나, 그날에는 흰 뺨과 코 끝이 벌겋게 얼고, 주머니 속을 전전하는 손끝마저 새빨갛게 물들 만큼 유독 추웠다. 숨을 내쉬면 흰 김이 퍼지고 핸드폰은 얼어붙을 듯한 추위 속에서 자꾸만 혼자 깜빡깜빡 꺼졌다.


그렇게 추운 날에 우리는 바다에 갔다. 눈 내릴 듯 회잿빛을 하고 있는 바다에.

그냥, 흔한 기념일 데이트 삼아서 갔다. 둘이서는 한 번도 바다에 가 본 적이 없었으니 이번 기회에 같이 가자고.

그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솔직히 바다에 나가는데 무슨 무거운 마음이 있었겠는가. 인어가 정말 있다는 것 정도만 밝혀졌던 그 시기에는 바다에 나갈 때도 그 정도 마음가짐이면 충분했다. ‘인어가 나오면 어떡해’, ‘우리 둘이면 인어 정도야 잡고도 남지’, 그 정도의 농담이나 했던가. 나도, 그도 정말 인어가 나올 줄 몰랐으니 할 수 있었던 농담이었다.



‘와, 진짜 추워.’

‘우리가 바다에 안 온 데 이유가 다 있었네. 9주년 때는 차라리 따뜻한 데로 해외여행 가자.’

‘음, 열대 기후는 힘들 것 같고. 아예 남반구 쪽으로 가 보는 건 어때?’



네 목소리가 아직도 내 머릿속을 생생하게 울려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겨울 바다를 찾았던 그 때와 달리 가을의 바닷 바람은 살이 에일 듯 차지 않다.

짭쪼름하고 비릿한 바다와 생선의 냄새 아래에 비릿한 피의 냄새가 가라앉아 있음을 알고 있다.

그 날과 달리 너는 내 옆에 있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모르는 건 그저, 그가 죽는 그 순간의 상황들이다.

어째서 나는 바다 속으로 빠지는 그를 잡아채지 못했는지, 그의 반지는 왜 내 손 안에 덜렁 남아 있는지.

그가 죽긴 했는지, 인어가 된 건 아닌지, 인어가 됐다면 아직 살아 있는지, 아니면 죽었는지.

바다 속에 산다면 대체 어디에 있는지. 왜 몇번이고 그 바다를 찾아도 내게 모습을 보이지를 않는지.



그래, 사실 그 날 이후 아무것도 알 수가 없어. 아무것도 모르겠어.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어.

네가 아닌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서, 무엇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그와 함께 키웠던 태권도장은 불조차 켜지지 않게 된 지가 오래고, 그와 함께 만들었던 인맥들은 연락조차 끊겼고.

그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나는.


나는…….

…….


차라리 사람이라도 구하러 돌아다니다 보면 너를 잊을 수 있을까. 잊고 나아갈 수 있을까.

살아 생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하고 그 일에 치여 살다 보면 좀 나아질까.

그런 결심을 가지고 온 곳에서는 네가 죽은 것조차 온전한 사고는 아니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아서.

네 죽음의 이유가 어떤 모종의 사건에 불운히 휩쓸렸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 같아서.


차라리 나도 너처럼 바다 속으로 빠져들고 싶었다.



●●,

아직 네가 죽은 날, 그 날에 살아.

2052년 12월 7일 토요일, 그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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